‘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왕건의 훈요10조에서는 ‘차령 이남의 물은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리게 흐르니 차령 이남과 공주강 밖의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고 했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을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그룹 삼성에서도 고인이 되신 이병철 회장 당시에는 ‘전라도 사람을 고용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수십 년 동안 공공연하게 떠돌아 다녔다.
경상도 출신이 정권을 잡으면 역시 호남 사람을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고 인사형평성을 고려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일부 호남 인사들을 등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시절에는 출세를 위해 본적을 옮기는 인사들도 더러 있었고, 공직을 퇴직한 뒤 국회의원을 출마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에 출마하기 위해 내려올 때는 자신이 이 고장 출신임을 더욱 강조하는 인물도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주변에서 종종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 쪽 보고는 오줌도 안눈다’라는 말을 한다. 무엇인가 그 사람을 질리게 만든 사연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나 좋든지 싫든지 자신의 고향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꼬리표는 부정한다고 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거기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학교는 타지에서 주로 다녔다. “그 곳은 부모의 고향이지 내 고향이 아니다”라고.
고향을 부정하는 사람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그 사람의 머리속 깊숙이 각인이 되었겠지만 고향사람들은 그를 기억한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고향사람이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스포츠 경기에 나가 우승을 다투고 있거나 하면 얼굴 한 번 직접 본적 없어도 응원한다.
며칠 전 아버지의 고향이 군산인 전인지 선수가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전에 미국과 일본, 프랑스, 한국 등지에서 메이저대회 등을 우승할 때와 마찬가지로 군산시민들은 응원했고 우승하자 마치 내일처럼 기뻐했다.
중앙단위의 금융기관 대표였던 군산출신의 인사가 행사장에서 전인지 선수를 보고 기쁜 마음에 찾아가 ‘군산출신’임을 밝히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돌아온 대답은 “저에게 ‘군산’얘기 하지마세요”여서 상당히 당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딸 같고 손녀 같은 전 선수에게 이 같은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다른 스포츠 종목도 후원하고 있는데, 전 선수도 후원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자신이 멋쩍은 적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고용위기,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군산시민들은 “군산얘기 하지 마세요”해도 말해도 25개월만의 전 선수 우승을 다함께 축하하고 있다.
허종진 / 2018.10.18 18:2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