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카페 바흐'와 주인장 타구치 마모루를 만났다. 1968년부터 카페 사업을 해 온 그의 저서는 <카페를 100년간 이어가기 위해>였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카페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자책을 수도 없이 했다.
개업 몇 달 지난 시점에 손님이 없다며 실의에 젖어있는 사실이 코미디였다. 기울인 노력에 비해 거는 기대가 부끄러울 정도로 컸음도 알게 되었다.
그는 4~5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밑바탕 공부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초기 4~5년은 고객 확보와 카페 홍보에 주력, 그다음 4~5년 동안 카페 만들기, 이후 4~5년은 인재를 키우고 조직을 구성하며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충격이었다. 아무리 장기적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카페를 한 그루의 나무로 비유했다. 세찬 폭풍우에도 굳건한 나무는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튼실한 줄기를 만들며,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균형 있게 가지와 잎이 뻗어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내 급한 성격으로는 속 터질 일이 분명했다.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내 주변에 널려있는 소위 '치고 빠지는' 사업의 귀재들에게는 '카페 바흐' 경영이 한낱 실속 없는 짓에 불과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개업 첫날, 오픈 이벤트의 유혹에 찾아온 하루짜리 손님들과 지인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카페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막대한 자금으로 시작한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고충보다는 늘 많아 보이는 손님만 눈에 들어와 카페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이라는 향수와 취미를 들고 거만하고도 무모하게 뛰어든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공식적이 아닌 나 혼자만의 재창업이었다. 그렇게 생긴 문구가 '100년을 이어갈 특별한 카페'이다. 단지 선전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100년이다.
언제까지 내가 경영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경영권을 넘겨 카페가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또 누군가에게. 그리하여 견실한 나무로 100년을 굳게 서 있는 카페로 만들고 싶었다.(계속)
"창업보다 몇 배 어려운 것이 가게를 제대로 운영하는 일입니다."
타구치 마모루의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 내게는 비장함마저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튼실하게 키울 생각에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여전히 손님이 없었지만 이전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다른 카페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철학과 소신, 경영 방침을 확고하게 고수하기로 했다.
그 무렵 윤종신의 <지친 하루>를 들었다. 노랫말이 좋았다. 내가 택한 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는 주도성과 신념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즘에도 그 길을 걸으면서 지칠 때가 있다. 음악이야기 나무를 2년 4개월째 키우고 있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줄기가 상하기도 하고 나뭇잎이 떨어지기도 한다. 열매는 해걸이 하듯 들쑥날쑥하다. 아직은 4~5년이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100년 중에 이제 2년이다.
오늘은 왔다가 그냥 간 손님이 더 많은 날이다. 한 팀은 소주를 찾았다. 국산 맥주 없냐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던지고 나간 커플. 어느 팀은 메뉴판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멤버들 전원이 메뉴판을 계속 앞뒤로 돌려보더니 하나 둘 일어나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고는 서로 앞 다퉈 나가느라 스텝이 엉키기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직원 하나는 흐트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면서 70년대 후반에 히트했던 <왔다가 그냥 갑니다>를 뽕필 나게 부른다. 음치다. 웃음이 터진다.
나는 윤종신의 <지친 하루>를 듣는다. 김필과 곽진언의 앙상블이 괜찮다. 전반부의 우울함보다 중반부의 신념을 외치는 노랫말이 좋다. 혼자 떠난 길에서 동무가 되어주는 노래 중 한 곡이다.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은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어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끝)
이현웅 / 2019.09.18 15:4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