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의 흔적은 소풍날에 찍은 단체 사진과 학교 졸업사진 뿐이다. 사진속의 촌스런 나의 모습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검정 고무신 이다.
그 시절엔 평소에는 늘 검정고무신으로 생활했고 운동화는 특별한 날이나, 소풍이나 명절 때 만 신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특별히 운동화를 새로 사러 가기 전날 밤은 설레어서 밤잠을 설쳤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부지깽이로 박자를 맞추며 콧노래를 부르면 아버지께서는
“우리 희야가 엄마하고 오늘 장에 간다고 기분이 좋은 갑네~~ 허허허!” 하신다.
“ 예!!!~~ 오늘 운동화 사준다고 했니더!!!~~”
“ 그래??!!!~~ 우와~~ 좋것네..”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발에 맞는 신발 사면 좋겠는데요..”
“ 와?..큰게 싫터노?..”
“ 예~ 너무 큰거를 신으니까 빨리 뛰지도 못하고..또 ..... 부끄러바서요~~”
“그래도 쪼매 더 낙낙한 거를 사야 내년 까지 신을수가 안있겠나~..발이 빨리 커서 그렇다 아이가~..”
아버지께선 온갖 얘기로 나를 달래셨다.
엄마와 장에 나설 때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 희야!!~~~ 오늘 맛있는 것 마이 묵고 오너레이~~~...”
“ 예~~ 오늘은 운동화도 살깁니다!..” 라고 하면
“우와!~~운동화 까지~~ 권희는 오늘.. 기분 댓길 이것구마....”
“네~~ 갔다 오겠십니더~~..” 하고 엄마보다 앞장서서 뛰어가곤 했다.
엄마는 곡물을 가득 담은 보따리를 머리위에 이고는 손도 안대고 묘기 부리듯 신기하게도 자알 걸으셨다.
시내 장터에 도착 하면 제일 먼저 엄마는 곡물을 현금과 교환 하셨다.
아직도 아주 시골에 가면 그렇지만 옛날 분들은 현금이 없으셨다. 그래서 뭔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농사지은 농산물을 시장에 가지고 나가 도매상에게 넘기고 돈을 만드셨다.
드디어 신발가게에 들어서면 나의 들뜸에 답이라도 하듯 신발 특유의 고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아직도 이 나이가 되어도 새 신발에서 나는 그 냄새에 설레인다.
내가 맘에 드는 신발을 고른 뒤 “엄마!.. 나 이거 ..”
“그래?.. 알았다!! 아지매~~~ 이 신발 좀 큼지막~ 한거 내놔보소..” 난 순간 헉!..
“ 엄마아아~~~ 인자 큰 신발은 신기 싫다 말이다아아~~~~!!!..”
“ 이노무 짜석아~.. 큰 걸 사야 내년 까지 신을 수가 있다 말이다!!!...”
“ 안해 안해 안한다고오오오~~~~!!”
“ 까불지말고 그냥 신어라이.. 아부지한테 맞는다이~~..”
엄마의 최고 무기는 아버지한테 혼난다는 으름장 이었다.
난.. 아버지가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 분 인줄 알기 때문에 하루 종일의 설렘이 푸시식 사그라 들어 버려서 실망하고 기분이 상해서..엄마의 협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 죽어 가만히 있는다 .
이제부터 엄마의 흥정 전쟁이 벌어진다.
“희야~ 신발 쪼매 큰거로 하자~~ 그라믄 맛있는 거 사주께~!!”
“머 묵고 싶노?~ 짜장면 사주까? 과자 사주까?”
그러면 나는 또 맛나는 걸 먹을 생각에 슬그머니 화가 풀어져서는“ 알았다~!!!”
하고 못이기는 척 답을 한다.
그런데 엄마의 본격적인 흥정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계속)
이권희 / 2019.09.18 16: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