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많이 기다렸잖아
진우는 선수, 가영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맥주 한 잔 하자는 선수의 제안도 거절했다. 들뜬 마음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우연히 알게 된 이상한 시험을 호기심 때문에 참가하고 작은 자격증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르엘을 만나 첫 눈에 반한 것도 좋았지만 그건 부수적인 사항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다.
진우를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인정]이었다. 이젠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아무런 발전이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던 차에 얻은 인정은 너무도 큰 선물이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누군가 내 특별함을 알아주길 바랐다. 이 날을 기억하고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몇 번이나 읽은 팸플릿을 끊임없이 탐독했다. 미카엘이 간단히 설명해 주었던 사항들에 사족이 붙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진우는 우월감에 취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자신의 특별함이 더욱 와 닿았다. 천사 후보생이라는 현실감 없는 호칭이 하나의 감투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캐리어를 열어볼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요 앞 골목만 지나면 집이 보일 차례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차갑고 두꺼운 팔이 진우의 어깨를 누르며 목을 둘렀다.
“야, 진우야. 어디 갔다 오나보다?”
그림자처럼 다가온 용완이었다. 부푼 팔이 목을 조여 왔다. 심장이 내려앉은 것처럼 놀란 진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혀……형. 용완이 형. 안녕하세요.”
“그래. 아침에 꽤나 바쁘게 뛰어가더라?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고. 내가 그렇게 못해준 것도 없는데 섭섭하더라. 여행이라도 갔다 왔어?”
하얀 캐리어를 턱턱 걷어차며 용완이 물었다.
“아니요. 그냥 짐이 많아서요.”
용완의 고갯짓에 같이 있던 남자가 캐리어를 낚아챘다. 그는 저만치 벗어나 거침없이 캐리어를 열어 헤집어댔다. 책자들이 펄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하얀 수건은 그대로 흙바닥에 뒹굴었고, 핸드폰 케이스는 차도로 하수구 틈으로 빠져버렸다.
“이건 또 뭐야?”
후보생들에게 지급된 트레이닝복을 집어든 남자가 이죽거렸다. 왼쪽 가슴에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하얀 트레이닝복이었다. 남자는 트레이닝복을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그가 갑자기 질색을 하며 옷을 집어던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진우는 용완을 밀치고는 남자에게 달려가 캐리어를 빼앗았다. 떨어진 트레이닝복을 집어 흙먼지를 털어냈다. 서러움에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퍽!
용완의 발이 진우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그는 쓰러진 진우를 그대로 짓밟으며 소리쳤다.
“이 새끼가! 이런 빌어먹을 새끼야! 누구한테 반항이야!?”
진우는 캐리어를 안은 채로 날아드는 발길질에 정신을 잃었다.
채명룡 / 2018.11.20 17:2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