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 마성의 매력을 지닌 ‘팔색조’ 도시, 군산-1
군산은 인구 27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입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소항구도시. 호남평야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지요.
그래서 당시에는 제법 큰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7,80년대 산업부흥기에도 ‘전라도’라는 이유로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 덕에 일제가 남기고간 적산가옥과 70년대 근대건축물들이 온전히 살아남게 됩니다. 그저 개발을 못했던 ‘혜택’으로 말입니다.
‘낙후된 한물간 항구도시’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던 군산은 그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보존의 상식조차 잃어버린 채,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가치를 담은 근대 건축물들은 수십 년 동안 먼지만 쌓여갔었지요.
심지어 어떤 문화재는 성인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선조들의 아픔이 가득한 건물에서 ‘하룻밤 부킹’이 즐겁기만 했을지 씁쓸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도권의 빛보다 빠른 발전 속도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어느 순간 ‘추억’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골목길을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허름하고 낡은 것들에 대한 기억들이 피어났습니다.
근대역사에 대한 기준과 평가가 바뀌면서, 일제강점기도 아픈 우리의 역사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가 남기고간 증거물들을 지우려고만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죠.
우리는 일본을 아직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용서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토요타’를 운전하고 ‘스시’와 ‘사시미’를 먹고, ‘사케’를 마시고, ‘건담’ 피규어를 모은다고 그 누구도 당신을 친일파라 부르지 않습니다.
역사는 역사고 문화는 문화기 때문이죠. 건축양식도 그러하고 놀이 문화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남기고간 비통한 역사의 파생물일지언정 ‘적산가옥’과 건축물들은 나름의 그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를 재생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1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이런 증거들을 보며 나라 잃은 슬픔을 다시는 격지 않게 될 거라고.
약 4~5년 전부터 군산은 월명동과 영화동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어 낡은 원도심이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은 한해 천만 명이 찾는다고 합니다. 군산은 이제 겨우 2~3백만 명 정도 온답니다. 짧은 기간을 감안한다면 이 숫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군산의 근대역사지구 개발은 전주 한옥마을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진행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콘텐츠 측면에서 볼 때 전주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수탈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의 ‘교육’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군산이 개발해야할 콘텐츠는 차고 넘칩니다. 군산의 자랑 ‘군산상고’와 ‘야구’만 가지고도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또 ‘박대’같은 특산물을 이용해 개발할 수 있는 음식도 수두룩합니다.
‘탁류’와 같은 문학작품들 속에 나오는 내용을 기반으로 조성할 수 있는 길과 골목길도 널려있습니다. 아름다운 금강과 새만금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관람차’도 필요하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철길을 활용한 놀이터도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단기소비적인 축제들을 줄이면서, 365일 항상 사용할 수 있는 관광테마에 투자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관이 돕고 주민이 주도하면 가능한 일들입니다.(계속)
ICM 대표
본지 객원 논설위원
채명룡 / 2018.11.07 17:3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