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출발한 선두팀들은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의미 없는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껏 속도를 냈다. 가장 먼저 출발한 지식과 부지런지 쫓아온 민주, 맹렬하게 질주한 선수가 1위 후보였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속도를 올린 선수들이 치고 나왔다. 그들이 앞서 나가자 좌측의 민주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 늦겠어! 빨리, 더 빨리!”
자매처럼 한 목소리로 외치며 민주들이 뒤를 쫓았다.
하마처럼 돌진하던 지식들도 악다구니를 지르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후보생들이 골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 순간, 호완이 대기실에서 나왔다. 자칭 슈퍼 모델 주호완은 잔뜩 성이 난 얼굴이었다. 그는 다른 후보생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천사들에게 달려왔다.
“이게 뭐야!”
“무슨 일이죠?”
산드미엘이 막아서자 호완이 증기를 뿜어내듯 빽 소리를 질렀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내 과거와 미래라고? 그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믿으라고?!”
호완이 대기실에 삿대질을 퍼부었다. 때마침 대기실 문이 열리며 호완의 과거와 미래가 모습을 보였다. 수북한 머리로 얼굴의 절반을 덮은 청소년 호완은 초라한 걸음으로 내려와 쭈그려 앉았다. 그 뒤를 따라 나온 미래의 호완은 더 우울해 보였다. 오른손에 가발을 든 미래의 호완은 풀이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웅크리고 있는 과거의 호완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모습을 슬쩍 본 산드미엘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특별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이는데요. 분명 주호완 후보생의 과거와 미래가 맞아요.”
산드미엘의 말에 호완은 더욱 크게 화를 냈다.
“거짓말!! 그렇게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믿을 것 아니야!
그는 과거와 미래에게 향한 삿대질을 멈추지 않았다.
“안 해!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하고 싶지도 않아! 천사는 개뿔, 안하고 말지!”
쥐고있던 끈을 집어던진 호완은 산드미엘을 지나쳐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종료 3분을 남긴 시간. 가영은 대기실을 가득 채운 불협화음 속에서 진땀을 흘렸다. 그녀의 두 파트너는 고집을 꺾을 줄 몰랐다. 과거는 손에 집히는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고, 미래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그 사이에서 시달리던 현재가 참고 있던 감정을 쏟아냈다.
“그만 좀 해!”
폭발한 가영의 외침이 잠시 대기실을 적막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거야? 난 생각도 안 해? 너희처럼 내 주장만 하지 않았다고. 항상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었던 일도 참으면서……. 내가 얼마나….”
가영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기다렸던 대답이 나오자 과거와 미래의 두 사람이 웃었다.
현재의 목소리가 무언가를 깨닫고 잦아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임규현 / 2019.10.09 11: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