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대기실을 나온 것은 희연이었다. 후보생들이 대기실로 들어간 지 7분 만의 일이었다. 10년 후의 희연은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현재의 희연이 꿈꾸었던 것만큼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생생한 젊음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반면 현재의 손을 잡은 6살 희연은 조금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때문인지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는 조금 이따가 올 거야. 그때까지 언니랑 놀까?”
낯선 환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린 희연이 말에 어른 희연이 대답했다.
“으응~.”
고개를 흔드는 격렬한 반응에 훌쩍이던 콧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어른 희연이 흐르는 콧물을 닦아 주는 사이, 어린 희연이 산드미엘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새다!”
옆 대기실에서 지식이 나왔다. 하얀 민소매 티를 입은 10년 전 지식의 팔에는 크고 험악한 문신들이 가득했다. 그는 다른 자신들과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미래의 지식은 주름살이 늘고, 피부도 쳐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세등등한 눈빛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벌게진 얼굴이 그를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다.
반쯤 부은 얼굴로 이를 가는 젊은 지식에게 나이 많은 지식들이 낮게 속삭였다.
“야, 티 나잖아. 얼굴 펴. 금방 끝내줄 테니까, 조용히 있다 가라.”
“…….”
자신에게 맞았다는 분함에 10년 전 지식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따라와. 후회하지는 말자.”
미래의 지식이 중얼거리자 현재가 뒤를 이었다.
“후회하지는 말아야지.”
“…후회하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현재와 과거는 미래를 따라 달릴 준비를 했다.
***
뒤를 이어 민주들이 나왔다. 키순서 대로 선 그녀들은 마치 자매 같았다. 어릴 적부터 외모에 빛이 났던 그녀는, 나이를 먹어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현재의 민주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올라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콧대를 세웠다.
여느 후보생들보다 쿵짝이 잘 맞은 그녀들은 쉴 세 없이 수다를 떨어댔다. 대기실 안에서도, 대기실을 나와서 서로의 다리를 묶는 와중에도 민주들의 입은 지칠 줄 몰랐다.
“결국엔 걔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더라. 가볍고, 비유만 맞추려고 하고. 진중하고 남자다운 멋이 없어.”
“그런 남자 찾기가 쉬운 줄 알아? 원래 남자는 여자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일단 그런 끼가 보이는 애들을 만나면 돼.”
“그래서? 미래에는 만날 수 있어?”
현재와 과거의 기대어린 눈빛에 미래는 대답을 망설였다. 시선을 회피하던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쉽지 않더라.”
임규현 / 2019.09.18 16: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