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는 앉은 상태로 유준이 남긴 말을 되새겼다. 정신을 잃지 말라니. 괜한 불안함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답답하던 속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진우는 일어나 다시 엔젤스 트윈 밸리로 돌아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조금씩 발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무거웠다. 기분 탓이 아니라 납덩이라도 단 것처럼 발목이, 그 다음에는 무릎이, 허벅지가 뻐근하게 당겨왔다. 손가락은 감각이 무뎌졌고 팔꿈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빌딩 입구의 회전문을 돌리는 데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간신히 문을 밀고 홀에 들어온 진우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801호.
“이 자식, 죽은 거 아니야?”
“야!”
가영이 선수의 뒤통수를 때렸다. 선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진우를 쿡쿡 찔러댔다. 침대에 누운 진우는 가는 숨만 이어갔다. 첫 발견자 아르엘을 비롯해 선수와 가영, 희연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진우를 지켜보았다.
“병원에 안 가도 괜찮을까요? 이것도 날개 때문인 건가요?”
가영이 아르엘에게 물었다. 그녀는 선수가 질투할 만큼 짙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이렇게 심한 건 처음보네요.”
“별 일 있겠어? 진우 얘가 머리는 나빠도 몸은 튼튼하잖아. 괜찮아, 괜찮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선수가 가영을 달래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진우가 눈을 떴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진우는 이마 위의 올려진 수건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사람 같지 않게 몸놀림이 가벼웠다.
“내가 얼마동안 누워 있었어?”
“겨우 1시간.”
한 숨 돌려 안도한 가영이 대답했다. 아르엘이 진우의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진우의 뺨을 화끈하게 만들었다. 아르엘이 진우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강진우 후보생,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솔직히 말해 주세요.”
그녀의 눈빛은 확신이 서려있는 진득한 빛을 띠었다. 1초도 안 되는 그 순간, 진우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유준과 만난 이야기와 거짓말 중에서 무엇을 말할지. 하지만 거래를 하던 그때, 유준은 분명히 말했다.
“이 거래는 나와 너 사이의 비밀이야. 알지? 이게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없던 일로 할 거야.”
진우는 “네.”라고 대답했던 과거의 자신을 기억했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아르엘이 누군가에게 고자질하리란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방 안에는 너무도 많은 귀가 있었다.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산책하고 돌아오는데 몸에 힘이 빠지더니….”
진우는 뻔뻔하게 말했다. 대답하는 순간만큼은 유준의 존재 기억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아르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기억이 없어요. 제 몸에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르엘이 잡았던 손을 놓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특별한 문제는 없어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진우는 바닥에 발을 딛고 섰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남아있었지만 몸은 가뿐했다. 시야도 또렷하게 맑아졌고, 숨을 쉬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은근히 가슴이 뜨끈하게 열도 올라왔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물끄러미 진우를 바라보던 가영이 중얼거렸다.
임규현 / 2019.05.14 17: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