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엔젤
[천사 후보생 모집]-1
천계의 업무에 참여할 천사 후보생을 모집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지원가능
추후 정식 천사로 임명 시 사후 천계 거주 가능
(1인 동반 심사 자격이 주어짐. 추후 상담 요망)
장소 : 디지털 단지 엔젤스 트윈 밸리 1105호
시간 : 2018년 6월 10일 오전 11시
“이게 뭐야?”
진우는 눈을 비비곤 다시 한 번 전단지를 읽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눈동자에 각인하듯 천천히 글자를 찍어나갔다. 그리고 나서 복도를 가득 채운 무리를 보았다. 저들 모두가 같은 목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멍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동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6월 10일.
“오늘이네.”
진우는 시간 확인을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선수와 가영으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잔뜩 밀려있었다. 진우는 그제야 두 사람을 두고 도망쳐 온 것을 기억했다. 그때, 다시 가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응. 나야.”
“너! 도대체 연락도 안 받고! 뭐하는 거야?”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가영이 빽하니 소리를 질러댔다. “너 어디야!” 라고 소리치는 선수의 목소리도 들렸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
진우는 광고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동한 호기심이 정신에 잠식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복도를 뛰어왔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단정한 교복에 노란 이름표를 단 채희연이었다.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희연은 계단을 뛰어 올라 온 듯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바람처럼 진우를 스치고 지나가다가 멈칫 서서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안 뛰면 늦어요!”
희연은 열혈 소녀처럼 땀을 닦고 다시 뛰었다.
“여보세요? 강진우! 어디라고?”
한참동안 말이 없자 가영이 크게 불렀다. 진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엔젤스 트윈 밸리 1105호. 거기서 보자.”
진우는 전화를 끊고 1105호를 찾아 이동했다.
복도를 따라 앞 모퉁이를 꺾어 들어가자 한 층 더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길고 넓게 늘어선 복도에는 똑같은 외관을 한 사무실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사무실 입구 위에는 1103호 라는 주소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1103호 입구 옆으로 [천사 후보생 선발 시험장] 문구와 함께 우측을 가리키는 배너가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프로젝트 엔젤]이 적힌 1105호가 눈에 들어왔다. 사무적인 기운을 물씬 풍기는 다소 투박한 글씨 아래 황금 나팔을 부는 천사 그림이 보였다. 단순하게 그려진 천사 그림에서 묘하게도 현실감이 느껴졌다.
1105호 사무실 앞에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긴 줄은 몇 번이나 구부러져 사무실 앞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진우는 가장 후미에 서 있는 희연의 뒤에 가 섰다.
“늦은 건 아니에요.”
희연이 진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돌렸다. 멀뚱히 선 진우는 막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사무실 안쪽을 기웃거렸다.
실내는 이제 곧 이사를 마친 듯 플라스틱 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가장 안쪽 창문과 맞닿은 벽은 파란 박스들이 천장과 닿을 정도로 높이 층을 만들어 들어오는 햇빛을 푸른색으로 변질시켰다.
하얀 정장을 입은 남녀 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서류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며 사무실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시선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런 냉소적인 태도에 진우는 왠지 심사가 뒤틀렸다.
“학생, 뭐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진우의 질문에 희연은 자신의 이름표를 가리켰다.
“제 이름은 희연이에요. 편하게 불러요, 아저씨.”
희연이 당찬 패기를 부리며 씨익 웃었다. 동글동글한 생김새와 다르게 당돌한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미안해요. 희연 학생. 지금 뭘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저거요.”
희연은 1103호 옆의 [천사 후보생 선발 시험장]을 가리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희연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책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커다란 노트를 꺼냈다. 모서리가 꾸깃하게 구겨진 갈색 표지에는 천사 합격 노트라고 적혀 있었다. 또박또박 쓴 둥근 글씨체가 희연의 얼굴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희연은 노트를 진우의 눈앞에 들이밀다 냉큼 품 안에 품으며 물었다.
“아저씨가 만약에 나랑 라이벌이 되면 어떡하죠? 나 방해할 거예요?”
“지금 뭘 하려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방해를 해?”
희연은 작은 머리로 빠른 계산을 하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로 굴렸다. 진우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실력과 인성을 가늠하는 듯 했다. 진우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만약 내가 라이벌이 되면 이 빚은 갚을게. 어때? 노트 보여줄 마음이 생겼어?”
“…정말이죠?”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나서야 희연은 노트를 넘겼다.
허종진 / 2018.07.18 17: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