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선수 입장
수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사이에 미래가 없는 것 같아. 그만 헤어지자.”
짧은 말 한마디에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진우는 커피 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수수한 수채화 같았던 현실이 거품처럼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이야? 장난치는 거지?”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 어젯밤 무엇을 했는지, 자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기에 진우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 있는 상태였다.
“방금 이야기했잖아? 나도 오래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우리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
“……왜?”
진우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내뱉었다. 그러나 수진은 목석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항상 똑같은 너한테 실망했어. 뭔가 하려는 의지도 없고, 꿈도 없는 것 같고. …그리고 지루해.”
“날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네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울컥한 진우가 반박하고 나섰다. 꼿꼿이 앉은 수진이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까 얘기 했었지? 어젯밤에 뭐했는지.”
“…그래.”
진우가 대답하면서도 주춤했다. 어젯밤 스포츠 토토로 얼마나 벌었는지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이 기억났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지만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거고, 나도 열심히 살고 있어. 공무원 시험 준비도 하고 있고. 너도 알잖아?”
“못 믿겠어.”
수진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었다.
“난 더 가능성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더 이상 연락 하지 마.”
그녀는 진우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는 다급하게 수진을 붙잡았다.
손을 뿌리치던 수진의 얼굴과 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진우는 수진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곤 피 뭍은 갈퀴를 잡듯 조심스럽게 잡았다. 만약 수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천사 교육을 받으러 오지 않았을 텐데. 진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남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진우와 가영의 틈을 비집고 선수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짠! 놀랐지?!”
그는 진우와 가영의 눈앞에서 방정맞게 춤추며 놀란 반응을 즐겼다. 그러다 수진을 발견하곤 우뚝 멈춰 섰다. 선수가 뚱한 표정으로 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얘는 뭐야? 네가 데려왔냐?”
채명룡 / 2018.12.27 16: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