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인연? 악연?
흥분한 가영이 꾸러미를 흔들며 몸을 떨었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촐싹대는 모습은 몇 년 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너 대학원은 어쩌고 여길 왔어?”
걱정 섞인 진우의 질문에 가영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 재밌는 일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
“뭐? 너 그러다….”
진우는 따끔한 충고를 해 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일침을 가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0층 강당에서 천사 후보생 환영회가 있다고 하니까 빨리 가자!”
기운 넘치는 가영은 진우를 가축처럼 끌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10층의 복도는 중세의 성당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치형 천장에는 호화로운 천장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고,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대리석이 박혀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벽에 걸린 금빛 촛대는 은은하게 빛을 뿌리며 보는 이의 시야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강당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천사들과 먼저 도착한 후보생들이 있었다. 후보생들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 익숙한 얼굴이 진우를 알아보았다.
“진우야.”
불과 두 달 전 진우에게 이별 선고를 한 수진은 다소 놀란 모습이었다.
“어? 수진아?”
진우는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얼굴을 마주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긴 어떻게……?”
진우가 물었다. 수진의 떨리는 손에 하얀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 그럼 너도?”
수진이 되 물었다.
“우린 특별한 교육을 받으러 왔어. 천사 후보생 선발에서 합격했거든. 너 저번 시험때 안보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왔니?”
가영이 진우의 대리인처럼 시크하게 나섰다. 진우의 연애 초기부터 수진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가영은 짙은 반감을 드러냈다. 발끈한 수진이 캐리어를 짚고 삐딱하게 서며 대답했다.
“나도 후보생이거든. 너도 온 것 보니까 아무나 후보생이 될 수 있었나보네.”
두 여자의 무시무시한 기 싸움 사이에서 진우는 침묵했다. 수진은 두 달 전보다 더 날씬해지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얼마만이지?”
수진이 가영을 무시한 채 진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억이 안나.”
거짓말이었다. 진우는 수진에게 버림받으며 흘린 눈물 방울의 수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수진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반가워. 네가 이런 재주도 있었구나.”
수진이 거만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채명룡 / 2018.12.19 17:2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