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진우는 욱신거리는 통증에 신음소리를 흘렸다. 시야를 가리는 환한 불빛이 따가워 다시 눈을 감는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퍽! 퍽!!
“이런 멍청한 새끼들!”
때리는 사람의 흥분된 숨소리와 맞는 이의 끙끙거림이 이어졌다.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격해져 있었다.
“이렇게 때리도록 그냥 뒀어? 거루, 이 자식아. 넌 눈도 없냐?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쨍그랑!!!
이번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만약에 이 녀석이 눈을 못 뜨거나 말이라도 못하게 되면, 둘 다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덜컥 겁이 난 진우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방금 일어난 것처럼 연기했다.
“형님, 이 녀석 일어났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끔한 차림의 남자가 진우에게 다가왔다.
그는 진우가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남자보다 하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과 깨끗하고 하얀 피부, 깊고 붉은 빛이 도는 눈동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꽃 미남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는 인자하게 웃으며 진우의 옷 여기저기를 털어주었다.
“괜찮아? 미안해. 애들이 멍청하게도 심하게 때렸지.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남자는 진우를 부축해 푹신한 의자에 앉혔다. 그제야 사무실 한쪽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용완이 시야에 들어왔다. 용완의 얼굴은 보라색 풍선처럼 멍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얀색 캐리어를 뒤지던 남자 거루도 두들겨 맞은 듯 축 쳐진 모습이었다.
진우를 일으켜준 남자가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건넸다.
“난 유준이라고 해. 이 사무실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지.”
유준의 손수건에서는 은은한 장미향이 났다. 커피 두 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몸은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네, 쓰린 곳은 있지만. 괜찮아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우의 대답을 들은 유준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용완을 걷어찼다. 용완은 욱 소리도 못 내고 배를 움켜잡고 굴렀다.
“일으켜.”
유준의 한 마디에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용완을 부축해 일으켰다.
“여기 네 물건이지?”
유준이 진우가 앉은 의자 옆에 있는 캐리어를 가리켰다. 깨끗하게 닦여 있었지만 여기저기에 생체기가 남아있었다.
“내가 그렇게 사람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용완이가 잘 안 듣더라고.”
“아니요, 괜찮습니다.”
유준이 친절하게 대할수록 진우의 경계심이 강해졌다.
“이름이 뭐야?”
“강진우요.”
“진우? 야~, 이름 좋네. 아직 학생?”
“아니요,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유준이 우뚝 서있는 부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머리가 엄청 좋나보네. 이 새, 아니 얘들은 머리가 나빠서 공무원은 엄두도 못내요. 이거 잘하면 공무원 동생이 생기겠네.”
동생이라는 단어에서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용완이 캐리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가방을 말이야, 어디서 난거야?”
채명룡 / 2018.11.27 22:2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