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4
김경련
123
F56
789
엘리베이터 안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없다
내 자리에
‘F’가 있는 걸 보면
참 슬픈 생각이 들어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할 거야
북
서 4 동
남
다른 숫자들이 할 수 없는 일
나는 해낼 수 있거든
내가 중심이 되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
구할 수 있거든
- <동시마중>(2020년 1·2월)
어쩌다 ‘4’라는 숫자의 운명이 이리 되었을까요. 아무 죄도 없이 누명 쓰고 도망 다니는 드라마 속 주인공 역이라고 하면 위로가 좀 될까요? 정말이지 내가 자리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깊은 슬픔에 빠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4’를 슬픔 속에서 구해 내 당당하고 멋진 곳에 있음을,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어요. 또 누가 알겠어요. 우리 자신들 말이예요. ‘4’처럼 내 자리를 빼앗기고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 어딘가의 또 누군가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아, 그런데 지금은 정말 ‘4’가 필요한 때, 모든 ‘4’가 코로나-19에게 달라 붙었으면 하는 나날입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모두가 승리하시길요.
신재순 / 2020.03.04 15:5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