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언제든 일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용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목재는 물론 기와 한 장, 뒤안 대밭까지도 일본산으로 건축된 동국사의 주지였던 종걸스님의 일갈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1995년 김영삼 정권 아래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복궁 코 앞에 세웠던 조선총독부 건물(광복 이후 중앙청)을 비롯한 전국의 일본식 건물과 유물, 유적들이 파손되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일본 잔재 지우기’가 이어졌고 군산의 대표적인 일제침탈의 유물들 또한 사라졌다. 보국탑, 자우혜민비, 개항35주년기념비, 공자묘 등등이 그렇다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상에서 비껴가기 어려웠던 동국사였지만 조계종의 말사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그 이후 20년, 지난 2005년 주지로 부임한 종걸(宗杰) 스님이 오면서 동국사의 이미지는 군산의 정신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의미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건물의 절로 익히 알려진 동국사를 일제의 침략과 지배 야욕을 직시하는 ‘역사의 산실’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이다. 이 때부터 일제 강점기 36년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파헤치고 오늘의 관점으로 일제 잔재 극복 과제를 실천해 왔다.
근대역사라는 단어 조차 생소하던 시절의 동국사는 그저 그런 절이었다. 지금의 동국사는 우리나라 근대역사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동국사 소장 유물 자료는 1만여점을 헤아린다고 한다. 대부분은 종걸이 주지로 부임한 직후인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에 걸쳐 대한해협을 오가며 수집한 것이다. 동국사와 군산시 관련 사진 한 장이라도 얻으려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털어 바다를 건넜던 땀의 결실이었다.
그 결과로 지난 2019년 6월 4일 동국사 아래쪽 대로변에 연면적 1,868m의 지상 3층 규모로 전시실과 세미나실을 갖춘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이 건립되었다.
민간위탁사업자로 선정된 대한역사연구소에서 수장하고 있던 약 10,000여점(이치노헤 스님 기증)의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다.
이 지역 일제 침탈의 증거를 찾아 일본의 조동종으로부터 되돌려 받고 그 유물들을 여러 차례 전시한 민족주의자 종걸 스님. 중이지만 중이 아니었고 스님이지만 스님 냄새가 나지 않았기에 불교를 넘어 존경받아 왔다.
월급을 털어 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쥐어주었고, 어렵고 힘든 문화예술인들의 등을 두드려주었던 그였다. 소탈했던 그는 때론 지역의 향토 사학자이자 불교 역사가로, 또 때로는 군산지역의 정신적 지주이자 동네 형님이었다.
지난 12월 18일 조계종은 동국사 주지 스님을 다른 분으로 바꿨다고 한다. 들리는 바로는 선운사 박물관 자리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다.
종걸이라는 스님이 없는 동국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세상 만사가 부처님 뜻대로 라고 했으니 이번 동국사 주지 인사에도 법문이 빛나는 뜻이 담겨 있으리라고 믿어 본다. 하지만 너무 아쉽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니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것이지만 한 굽이가 꽉 막힌 것 같아 답답하다. 불교에서 하는 일을 범인이 간섭할 수 있으랴만 ‘하필 지금 그 인사를 해야 했느냐’라고 한마디 묻지 않을 수 없다.
채명룡 / 2020.12.23 16: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