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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상영 목사의 성광 강단: 하나님의 은혜

    김민재

    • 2019.01.10 11:33:03

    차상영 목사의 성광 강단: 하나님의 은혜

    본문: 고전 15:10

     

    완주한 한 해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아프리카 흑인으로 처음으로 올림픽을 제패한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가 부상으로 중도에서 경기를 포기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대부분 선수는 결승점을 통과하고 경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관중석엔 불과 수천의 관중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라톤경기의 마지막 주자가 오고 있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주자는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선수였다. 그런데 그의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을 고통으로 비틀거리면서 달리는 그에게 방금만 해도 조용하기만 했던 수천의 관중들은 서서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크와리는 트랙을 돌면서 고통 속에 경주를 계속했고, 관중들의 환호는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그가 다리를 절면서 결승점을 지났을 때, 관중들은 마치 그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를 마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어떻게 그런 고통 속에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질문을 받았다. ‘아크와리선수는 대답한다. “내 조국은 나에게 경기에만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보낸 것이 아니라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나를 보낸 것이다.” 여러분 모두 2018년 한 해를 잘 완주했다. 수고했다. 잘했다. 박수를 보낸다.

     

    은혜

    송년 주일에 떠오르는 단어가 은혜다.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말씀에서만 은혜란 단어를 세 번 반복한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나의 나됨이 은혜

    먼저 내가 나 된 것은 은혜다. 앞의 나는 예수 믿기 전의 나다. 뒤의 나는 예수 믿은 후의 나다. before , after , 과거의 나, 현재의 나가 전혀 다르다.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전의 나와 지금 내가 다르다.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 세상 풍조를 따랐다. 불순종의 영을 따랐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하나님이 없이 살았다. 어둠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하나님의 가족이다. 빛의 자녀다. 예수 믿고 변화 받아 달라졌다. 이게 은혜다. 만약 예수 믿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까? 예수 믿고 교회 나오게 된 것이 은혜다.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이 은혜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음이 은혜다. 찬양할 수 있음이 은혜다.

     

    사역()할 수 있었음이 은혜

    바울은 어떤 사도보다 수고를 많이 했다. 수고(, 사역)할 수 있었음이 은혜다. 20장에 포도원 품꾼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다섯 번 품꾼을 모은다. 오전 6, 9, 12, 오후 3, 5시다. 일 할 수 있음이 은혜다. 오전 6, 하루 수입이 보장된 일터를 얻게 된 것이 은혜다. 오후 5, 마감 한 시간 전, 하루 공칠까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마지막에 일터를 얻게 되어 은혜가 배가 되었다. 주인은 일당을 모든 품꾼에게 균등하게 준다. 마지막 품꾼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첫 번 품꾼은 불평을 쏟아놓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 번 품꾼이나 마지막 품꾼이나 똑같다고 하신다. 마지막 품꾼 역시 늦잠자고 늦게 인력 시장에 간 것이 아니라 새벽 일찍 갔지만 써 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후 다섯 시까지 할 일없이 기다렸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도,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서성이는 오후 5시 성도와 자녀가 있다. “왜 그 정도만 하냐?”할지 몰라도 예수님은 똑같이 기회를 주신다. 이게 은혜다. 예수님은 다섯 번이나 기회를 주신다. 아침 9, 12, 3, 5시 은혜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 마지막 끝자락에 부어주시는 은혜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하게 하셨다.

    필립 얀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 책은 1977년에 출판되어 1500만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고, 2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서문에서 인상적인 말을 한다. “은혜를 설명하기 보다, 은혜를 전달하기 원한다.”

     

    은혜 전달 도구로 쓰임 받는 곳이 바로 교회다. 교회 에게만 기대할 수 있고,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이 바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비참해 질대로 비참해진 창녀의 실화다. 교회에 도움을 요청해 보았느냐는 질문에 창녀는 대답한다김민재 / 2019.01.10 1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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